성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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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전남 무안에서 출생하셨다. 속명은 강호성이며 열네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중등학교를 마치고 귀국하여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셨다. 메이지대학 재학중 징병으로 끌려왔다가 해방을 맞이하셨다. 사재를 털어 지금의 망운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을 벌였으며, 동서양의 철학에 심취하여 공부하던 중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화상을 스승으로 출가하여 득도하셨다.

이후 40여 년간 한 번도 주지를 맡지 않고 상무주암.백장암.상견성암.사성암 등 20여 곳의 토굴을 옮겨다니며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종식과 자리에 눕지 않는 장좌불와의 수행을 계속하셨다.

대화상께서는 후래수도인들을 위하여 희유한 법은을 끼치셨는데 특히 견성성불의 첩경법문으로서 반야관조의 보리방편문과 구경해탈을 위한 수증의 위차로서 대소경론의 수증론을 회통한 해탈 16지의 수릉엄삼매의 묘경에서 일진법계의 성상을 관조하는 수릉엄삼매도와 수릉엄

삼매도결상편등 기타 찬술에서 석존께서 성도시와 열반시에 친수증시하신 근본선정인 구차제정과 또한 동서문자의 통일을 념원하시고 중생의 음성을 관찰하여 수기제도할 방편으로 창제한 관음문자와 무명중생의 전도지견으로 분별한 현대1985년 전남 곡성의 동리산 태안사에서 3년 결사를 시작으로 회상을 이루시고 대중교화의 인연을 맺으셨다. 95년까지 태안사에 계시면서 동리산문을 다시 일으키고 염불선을 통한 통불교를 주창하셨다. 95년 미국으로 건너가 금강선원을 열고 해외포교를 주창하셨따. 95년 미국으로 건너가 금강선원을 열고 해외포교에 힘쓰시다가 99년 귀국하셨다. 이후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과 성륜사 조실로 계시면서 수행정진하셨고, 2002년 서울 도봉산 광륜사를 개원하셨다. 법문집 ‘정통선의 향훈’’원통불법의 요체’’마음의 고향’’진리의 길’’가장 행복한 공부’’마음, 부처가 사는 나라’ 등이 있고, ‘금강심론’을 편저하셨으며, 역서로는 ‘정토삼부경’’약사경’’육조단경’등이 있다. 이후 40여 년간 한 번도 주지를 맡지 않고 상무주암.백장암.상견성암.사성암 등 20여 곳의 토굴을 옮겨다니며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종식과 자리에 눕지 않는 장좌불와의 수행을 계속하셨다.

대화상께서는 후래수도인들을 위하여 희유한 법은을 끼치셨는데 특히 견성성불의 첩경법문으로서 반야관조의 보리방편문과 구경해탈을 위한 수증의 위차로서 대소경론의 수증론을 회통한 해탈 16지의 수릉엄삼매의 묘경에서 일진법계의 성상을 관조하는 2003년 11월 12일 세납 80세, 법랍 56세로 입적하셨지만, 치열한 수행정신과 청빈한 삶으로 수행자들의 귀감이 되셨던 스님의 귀한 말씀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사세계 (辭世偈)를 밝히고 있다.


‘차세타세간 此世他世間: 이세상 저세상
거래불상관 去來不相關: 가고옴은 상관없지만
몽은대천계 蒙恩大千界: 입은은혜 대천계같이 많은데
보은한세간 報恩限細澗: 갚은은혜 물줄기같이 적어 한이로세’
라는 게송을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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